저자 Prolog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불과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은 정보 통신 업체와 학계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과 전자상거래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는 형편이다.
어느 기관에서 어린이들의 컴퓨터 이용 현황을 조사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은 아이들 중 3분의 2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면 이미 무인도가 아니겠지만, 무인도에 대한 개념조차 뚜렷하지 않은 아이들조차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인터넷과 컴퓨터라고 느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인터넷이 단순히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환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철없는(?) 대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은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사실, 인터넷만큼 빠른 속도로 생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술은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또한, 인터넷만큼 짧은 시간에 전지구적으로 파급된 사회 현상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이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 파급되는 데는 1세기가 넘게 걸렸다. 더구나 아직 진행중인 지역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인터넷의 시간적, 공간적 장악력은 놀랍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터넷만큼 세대와 환경에 따라 수용 격차가 큰 기술 및 현상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컴퓨터가 친구이고 인터넷이 뛰어 노는 마당인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프린터 드라이버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에 컴퓨터에 운전사가 왜 필요하냐고 대꾸하는 어른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지구적인 광역성을 자랑하는 인터넷이지만 사람들 간의 수용 지체는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인터넷과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최종 목표는 관련된 모든 것을 '투명하게'(transparently - 사용자가 시스템이나 장치를 사용할 때, 그 존재와 메커니즘을 의식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성격을 가리킨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현재로서는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요구한다. 따라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한 지식과 운용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E-business (R)evolution"이다. 저자는 인터넷 테크놀로지와 경영 기법의 '진화(evolution)'가 디지털 경제 '혁명(revolution)'을 이끌어낸다는 메시지를 '(R)evolution'이라는 말로 재기있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혁명에 비해 점진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진화 혹은 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주위의 인터넷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인터넷에 대해 벽을 쌓아둘 필요는 없다. '온고지신'의 교훈은 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때와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되기까지는 약 1년 정도의 시차가 있지만, 이 책은 몇 개월 동안 유행처럼 반짝했다가 사라져 버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대한 설명서가 아니다. 새로운 것, 더 새로운 것을 탐닉하는 인터넷의 속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터넷과 e-비즈니스의 근간을 이루고 테크놀로지와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와 그 적용 사례들이다. 이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이러한 분야의 지식들을 백화점식으로 늘여 놓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기술들이 현재 업체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와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변모할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저자는 네트워크와 컴퓨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 웹 브라우저와 그래픽 포맷에서부터 공개 소스 운동과 온라인 업체의 세금 문제까지 인터넷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e-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거나 현재 실행중인 경영자와 업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여러 모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번역한 덕택에 인터넷 분야의 어지간히 전문적인 기사나 대화에도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가 되었다.
이 시간에도 우리 주위에는 0과 1의 비트로 이루어진 무수한 양의 데이터와 컨텐츠들이 수신될 단말기를 기다리면서 유て무선으로 떠돌고 있다. 최신 가요의 MP3 파일에서부터 무선 데이터 전송 기술과 새로운 프로토콜을 통해 텔레비전과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서로 말문을 열어 바벨탑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게 될 미래에 대한 예언까지 거의 무한대의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정보화 시대의 혜택이 익은 감처럼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런 방향 감각을 얻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네트워크와 컴퓨팅 분야의 전문 용어를 옮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 생겨난 말들은 왜 그리 많은지.... 그 대부분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그 언어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일반적으로 대응시키고 있는 우리말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 용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주 등장하고 있는 'customization'이라는 단어를 음역보다는 '맞춤화'라는 말을 만들어서 옮기는 등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대부분은 원어 그대로를 소리나는 대로 적어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외래어 사용을 배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niche market'을 '틈새 시장'으로 옮기는 참신한 번역이 가능한 것처럼, 보다 자연스럽고 적확한 우리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접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번역한 사람으로서 모자람과 책임을 동시에 느낀다.
이 책을 번역하는 데 여러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책 전체를 감수해준 윤지상씨와 정보문화사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참조한 여러 사전들에게도 감사하고 있다. 사전을 편찬하느라 오랜 세월을 씨름해온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현재 성공회 부제인 이주엽형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대학에 다닐 때 형이 번역을 권유하지 않았다면 번역 일을 시작하지 못했을테고, 지금 이 책을 번역하는 인연도 없었을 것이다.
가장 깊은 감사의 말은 어머니와 아버지께 돌리려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하느라 밤 도깨비처럼 지내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를 안스럽게 지켜보셨던 당신들이 나보다 더 마음 고생을 하셨다. 마지막으로 밤 늦게까지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는 형 때문에 좋아하는 게임조차 하지 못했던 동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